(영화)마지막 사중주


A Late Quartet, 2012 / 야론 질버만 Yaron Zilberman


FOUR QUARTETS

 

T.S. Eliot

BURNT NORTON

(No. 1 of 'Four Quartets')

Time present and time past

Are both perhaps present in time future,

And time future contained in time past.

If all time is eternally present

All time is unredeemable.

What might have been is an abstraction

Remaining a perpetual possibility

Only in a world of speculation.

What might have been and what has been

Point to one end, which is always present.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도 모두

미래의 시간 속에 있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속에 들어있다.

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라면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

혹은 끝이 시작을 앞선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끝과 시작은 늘 그곳에 있었고

시작의 이전과 끝의 이후엔 늘 현재가 있다.)

 

시인 T. S. 엘리어트(Eliot)는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곡에 네 편의 시를 바쳤는데 그 중 처음 부분이다.(OP.131을 위한 시가 아니라, 마지막 곡 이라면 OP.135? 그러고보니, 마지막 사중주의 의미는 베토벤의 마지막 사중주는 아니겠군.)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Gregor Piatigorsky)가 겪은 실화, 과르네리 현악4중주단(Guarneri String Quartet), 이탈리안 현악4중주단(Italian String Quartet), 에머슨 현악4중주단(Emerson String Quartet)을 모델로 영화 속 가상의 ‘Quartet 푸가멤버들 개인의 삶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단면, 또는 전체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2바이올린 연주자 로버트 겔바트비올라 연주자 줄리엣 겔바트가 부부이고, ‘1바이올린 다니엘 러너Quartet을 만들었으며, ‘첼로 연주자 피터 미첼은 파블로 카잘스와 여러번 만난 적 있는 저명한 연주자이다.

 

멋진 연주로 연주회장에서 관객을 홀리듯이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음악과 함께 달달함을 기대한다면 잘못된 기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첼로연주자의 수업 장면에서 T.S. EliotBURNT NORTON(No. 1 of 'Four Quartets')을 인용하며, 300년 전의 음악도 30년 전의 카잘스와의 만남도 현재였음을 깨닫게 한다.

 

결국, 이 영화 전체의 주제는 존재하는 모든 시간은 현재이고, 현재였고, 현재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속에 놓여 있는 인간은 과거와 미래의 모든 현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현재를 지나온 지금(현재)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서서히 푸가’ Quartet 멤버 모두의 문제가 하나씩 드러난다.

 

첼로 연주자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아 더 이상 연주가 불가능하고,

2바이올린, 비올라 부부는 2바이올린 남편이 1바이올린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으며, 비올라 아내는 바로 이를 알아차리게 되고,

1바이올린 남자는 2바이올린, 비올라 부부의 20살 딸과 연인 관계를 시작하려 한다.

 

도저히 풀릴 수 없을 것만 같이 얽혀 버렸다. ‘푸가’ Quartet 멤버들 모두가 각자 개인의 문제를 중심으로...

 

얽힌 매듭을 잘라야 할 것 같지만,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첼로 연주자의 이전 Quartet 활동이 멤버 한 명이 죽은 후 해체되었기에,(이 영화는 과르네리 콰르텟, 이탈리안 콰르텟, 에머슨 콰르텟이 그 모델이라고 한다. 과르네리 콰르텟은 헤체되었고, 이탈리안 콰르텟은 암보 연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 일이 반복되어선 안된다는 확고한 의지 위에 문제를 하나씩 풀리내기 위한 유연한 사고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2바이올린은 아내에게 자신의 평생의 절대적 사랑을 고백하고,

일 년 중 7 개월을 나가 있는 엄마의 딸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엄마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던 딸은 그 엄마에게 뺨을 맞은 후, 그 엄마를 낳다가 죽은 외할머니에 대해, 그리고 엄마가 첼로 연주자 부부 집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는 엄마의 인터뷰를 보게 되고, 엄마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이어서 1바이올린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아마도 이 어린 바이올리니스트는 푸가의 미래 어느날 현재엔 무대 위에 있게 되지 않을까.

 

다행히 푸가’ Quartet은 이어진다. 대체가 불가피한 첼로 연주자만이 적절한 멤버로 교체되면서...

현재를 이어받은 현재는 현재를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장거리 비행과 시차적응(Jet lag)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구토를 했다는 요요마, 아빠의 직장이 공항인 줄 알았다는 요요마 아들...

 

전문 연주자의 고달픈 삶이란...

 

반면, 나는 고단한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시차적응(Jet lag) 걱정도 없이 최고 수준의 연주로 300년 전 누군가의 현재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음악에 대한 헌신으로...그렇기에 연주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단 한 부분이라도 온전히 스며들 수 있다면...

 

이창동 감독의 명작 영화 (Poetry,2010)’에서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 연기를 했던 윤정희 배우가 10 여년 동안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 한다. 그 영화 촬영 당시에도 대본을 외우지 못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한다. 피아니스트의 아내로 언제 어디에서건 남편 곁에 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녀가 피아니스트의 우아하고 품격있는 아내로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들려주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어느 때의 현재이든지 그곳에서 행복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녀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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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Beethoven Op.131의 전 악장이 영화 전체에 골고루 흘러서 정말 좋았다. 하지만, 전문 연주가가 아닌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은 음악과 맞지 않아, 거슬리고 불편했다. 다 좋을 순 없겠지. 이런 영화를 만들어 준 게 어딘가.

몇 년 전에 처음 볼 때도 때도 좋았고, 오늘 다시 볼 때도 또 좋았다. 음악 영화이지만, 음악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영화 자체만으로도 구성과 메시지 전달에 있어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러스트 앤 본, 스윗 프랑세즈,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예정에 없었던 나홀로 영화의 날.
하루에 영화 4편 보기. 하루 야구 3경기 보는 것 만큼이나
취미 막노동.ㅠ 하루 4편까지는 이제 자제하기로...

그리고 두통은 집중을 요하는 예술이
나에게 내미는 귀여운 자기 존재감!

1.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Attila Marcel, 2013, 실뱅 쇼메
애니메이션감독Sylvain Chomet
 
  * 그는 피아노를 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 깨우는 의식으로서의 두드림이었을까?
  * ‘의식-전의식-무의식’으로의 프로이드식 유쾌한 타임슬립.
  * 플러스가 생기면 마이너스가 있어야 제자리에 설 수 있게 되는 삶이라는 밸런스.

2. 러스트 앤 본
Rust & Bone, 2012, 감독 자크 오디아르(Jacques Audiard)

   * 인생의 나락에서 기댈 수 있는 것은 본능적 쾌락이 아닌, 소통하는 영혼의 존재.
   * 책임감이 아닌 절대적 사랑과 그 대상. 아들.

3. 스윗 프랑세즈
Suite francaise, 2014 , 감독 사울 딥 (Saul Dibb)

   * 뻔하게 이어지는 듯 하지만, 스윗한 상남자가 남기는 사랑의 증명에 살며시 피어나는 미소.

4.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7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감독Guillermo del Toro

   * 이해할 수 없어 박수치게 되는 그들의 사랑. 그렇기에 비로소 공감되는 아이러니. 아름다움이 아님에도 끌리게 되는...
   * 느리고, 안 들리는 우주같은 물 속으로 안내하는 따뜻하고, 깨끗한 위로 한 움큼.














CALL ME BY YOUR NAME

CALL ME BY YOUR NAME

  몇 년 전 신중히 영화를 골라 영화관에 갔는데, 연속해서 3편이 퀴어 영화여서 ‘요새 영화 트랜드가 퀴어(Queer)인가?’라고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다.  ‘캐롤(Carol / 2015 /토드헤인즈 감독)’, ‘대니쉬 걸 (The Danish Girl / 2015 / 톰 후퍼), ‘아가씨(박찬욱 감독)’...

  그래서 내친김에 봐야지 봐야지 하고 미루었던, 그 유명한 퀴어 영화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 2005 / 이안)’을 네이버에서 유료 다운로드를 받아 봤었더랬다.  이 영화는 풍경과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아름다워 영화의 주제는 뒤로 한 채, 영화에 푹 빠졌었고, 리즈시절의 제이크 질렌할(Jake Gyllenhaal)과 히스 래저(Heath Andrew Ledger)가 너무 멋있어서(이들은 스트레이트이지만, 게이 연기를 한 듯 했다.) 이들이 나온 영화들을 다 찾아서 봤더랬다. 예상 못한 즐거움들이 찾아와서 행복했었더랬다.

  그리고, 퀴어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 그 어떤 것을 참신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았더랬다. 인간의 사랑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을 때, 남녀 간의 사랑은 불륜부터 시작해서 패륜, 시한부 연인에 대한 사랑까지 인간의 역사만큼 오랜기간 다루었을 금기시 된 사랑의 모양이 사랑이라는 단어에 먼지가 듬뿍 쌓인 것만큼이나 모두 진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레즈비언이나 게이의 사랑이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되거나, 이들의 결혼이 가족M&A가 되어야만 하는 정략 결혼의 전제가 되는 일이 일어날 리는 없지 않겠는가. 어린 미모의 아내가 성공한 남자의 현재 사회적 위치의 상징임을 애써 내보이고자, 험난한 인생의 동반자인 늙은 아내를 의리없이 내치고 외모지상주의적 사랑에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들이대며 이해를 강요하는 빛바랜 뻔한 사랑일 리도 없고...

  ‘사랑’이라는 흔해 빠진 단어를 아무데나 갖다붙이며 자신의 본질적 실리를 가리는 도구로  치부해 버릴 너덜너덜해진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반짝이는 원석으로, 온전히 인간의 감정, 사랑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퀴어 문학(또는 영화)에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면 문학 속의 그들의 사랑에 마음 지릿하고, 짠하고, 공감되고 슬프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전한 슬픔으로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사랑’이란 단어가 세상에서 가장 유치하게 느껴지고,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지만(나는 여러 종류의 고객이므로, ‘고객님, 사랑합니다’...등)누구에게도 건넬 수 없는 단어이며, 그 단어가 꼭 필요한 순간엔 이모티콘이나 대체어를 찾았고, 나의 감정에서 가장 뒤로 밀렸고, ‘이젠 완전히 남의 일이지. 그럼...’이 당연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 향유의 목적은 결국 그 감동을 내 삶 속에 비추어 나의 내면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정하는 데 있다. 퀴어 문학 작품에서 인간이 가진 ‘사랑’의 큰 힘을 온전히 순수하게 다시 새로운 시선에서 느끼고, ‘사랑’이라는 가장 뒤쪽으로 밀려난 내 감정을 계속 앞으로 밀어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깨끗하고 온전한 사랑에서...

  작년에 나의 열정이 부럽다고 가끔 이야기해 주시는 존경하는 영어 선생님께서 이 영화를 보면, 내가 너무 좋아할 것 같다며, 달려와 추천해 주셨다. 꼭 보라고... 혼자 보라고...

‘CALL ME BY YOUR NAME’

제목이 흥미로웠고, 감독을 보니,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였다. ‘비거 스플래쉬(A Bigger Splash, 2015)’와 ‘아이 엠 러브(I Am Love, 2009)’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좋아하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날 당장 영화의 전당으로 가서 영화를 듬뿍 만끽했다. 너무 좋았다. 영화관에서 본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이태리의 풍경과 그 풍경 속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또 유료로 네이버에서 다운 받아서 두 번 정도를 집중해서 다시 본 것 같다.

  그러던차에 옆자리 선생님과 2019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티모시샬라메(Timothee Chalamet)의 가쉽을 이야기 하다가 ‘CALL ME BY YOUR NAME’ 영화 이야기가 나왔고, 선생님께서는 몇 년 전 책으로 봤다고 하셨다. 영화에서는 헤어짐 후 다시 만나지 않는데, 소설에서는 헤어짐 후 엘리오(Elio)가 올리버(Oliver)를 미국으로 찾아간다고 했고, 미국인 특유에 구름 많은 하늘같은 애매모호한 태도의 올리버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다. 하이틴 로맨스 같더라는 말을 덧붙이며... 당장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빌려 읽었다.

  영화는 한 여름 찰나의 사랑(한국어 의역 제목은 ‘그 해 여름 손님’)을 그리는데 비해, 소설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내 삶을 지배하는 단 한 사람, 내 이름으로 그를 부를 수 있는 오직 단 한 사람과의 사랑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소설의 마지막, 30쪽 동안에서 6개월 후 재회, 15년 후 재회, 20년 후 재회 이렇게 세 번을 다시 만나는데 좀 너저분한 결말이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는 영화대로 또 짠하고 가슴시린 여운을 남기면 더 좋고, 소설은 원작 제목인 ‘CALL ME BY YOUR NAME’의 의미를 좀 더 확고히 드러내, 한 사람과의 사랑의 의미를 완전히 끌어 올려내고 싶었을 테지... 나와는 모든 면에서 접점이 없는 듯 하지만, 이들의 공간을 들여다보고, 이들을 부러워하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는 일...

그것만은 나의 몫이리라!

Elio의 아버지 조언 - 급하게 상처를 떼어내지 말라며, 그렇게 하면 몸의 살들이 떼어져 나가 서른쯤엔 그런 감정을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고(대부분의 사람이 최대한 빨리 잊으라 하지 않나?), 사람은 섬이 아니므로 혼자 살 수 없다고(좀 찔렸다. 난 지금 섬이지 않은가?), 그나저나 남자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는 것일까?











Casals Quartet

Casals Quartet

베라 마르티네즈 메너(Vera Martinez Mehner, Violin), 아벨 토마스(Abel Tomas, Violin), 조너선 브라운(Jonathan Brown, Viola), 아르나우 토마스(Arnau Tomas, Cello)

2019. 10. 23.(수) 8시.
[프로그램]
Haydn / String Quartet No.30 in E-flat Major Op. 33-2 Hob. Ⅲ:38 “The Joke”

Beethoven / String Quartet No.6 in B-flat Major Op. 18-6

Intermission

Mozart / String Quartet No.22 in B-flat Major KV. 589 “Prussian”

Beethoven / String Quartet No.11 in f minor Op. 95 “Serioso”


한국 첫 내한 공연, 유럽에서 극찬한 유명 콰르텟.
직장인에게 피로의 정점인 수요일 저녁 시간을 온전히 바쳐 왕복 3시간을 운전해서 다녀왔다.

옆자리 화학 선생님께서 콰르텟을 좋아한다며, 피아노 소리보다 현악 소리가 훨씬 좋다고 하신 말씀에 이끌려, “10월에 저랑 콰르텟 공연 보러 가실래요?”말이 툭 튀어 나왔고, 단번에 좋다고 하신다. 우리가 이 공연을 예약한 것은 4월...(Ehnes Quartet 때문에 알게 된 공연)평일 저녁에 무언가를... 그것도 지방까지 다녀와야 한다는 건 대부분이 기피하기에 선생님께 누가 된 건 아닌지... 혹시 취소하시겠다하면 아무말 없이 혼자 다녀오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당일이 되니 오히려 나보다 더 들떠 계신다. 나도 덩달아 기대감이 증폭 되었다.

내가 가장 기대했던건 베토벤 현사... 베토벤을 듣다보면, 인간이 살아내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심리가 섬세하게 아주 잘 느껴진다. 베토벤이 혼자 고민하는 모습들 - 권력 앞에서의 조아림 뒤의 죄책감, 절대 고독, 사랑의 설렘, 사랑의 상처, 생활고, 가족에 대한 연민과 불만, 신체적 위축 등- 다양했을 베토벤의 삶의 여정을 다 느낄 수 있다. 특히 그의 Quartet에서...

두 곡이나 한다니... 너무 기대가 됐다.

드디어 공연 시작... 그들이 당당히 무대위로 걸어 들어온다. 가장 먼저 이들의 활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크 활을 사용하는구나... 하프시코드와 함께 연주할법한 바로크 음악(내가 아는 범위에서 바흐, 비발디, 헨델 등)에서나 사용하는 줄 알았건만... 흥미로웠다.
첫곡... 하이든곡... ‘joke’라는 부제에 맞게 시작이 정말 경쾌하고, 멜로디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예습차 꽤 많이 들었는데, 1바이올린이 “내가 어떤지 말해봐, 말해봐, 빨리 말해봐”라고 다급하게 빠른 속도로 반복해서 물어보는 것처럼,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경쾌함으로 시작되었고, 이 멜로디가 주제 멜로디였다.(오늘도 하루종일 듣게 되네.) 소리가 너무 맑고 깨끗해서 깜짝 놀랐고, 처음 듣는 소리처럼 새로웠다. 날카로움이 완전히 손질된 똥글똥글한 바이올린 소리라니... 소리가 좀 작게 난다는 것은 한참을 들은 뒤에야 깨달았다. 내가 애플 뮤직에서 들었던 음악이 아니었다. 분명 친숙하지 않아, 좋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좋았다. 레가토 없이, 소리가 이어지지 않고, 똥글똥글 피어오른다. 물방울을 하늘에 날리는 것 같았고,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이들은 스페인에서 역사가 시작되었고, 모두 스페인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르셀로나 몬주익의 까딸루냐 미술관, 까딸루냐 음악당, 그리고 내가 스페인과 사랑에 빠져 넘쳐흘렀던 내 감정적 충만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로마의 엠마누엘레 2세 건물 앞 풍경 한 장면이 강렬하게 떠올랐지만, 왜 그 장소가 떠오른건지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고,(정확히는 찾고 싶지 않았고)자연스럽게 머물고 있던 기억을 놓아 흘러가게 놔 주었다. 어느새 4악장까지의 곡이 다 끝났다.
베토벤 op. 18-6까지는 바로크 활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2부 모차르트와 베토벤 ‘serioso’는 시각이 청각에 영향을 주었다. 활이 현에 쫙 달라붙어 질펀하게 깊숙이 그어지는 레가토의 참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18세기까지 바로크 활을 사용했다고 하니, 모차르트 곡은 바로크활이 당시의 음악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난 모던 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레가토 활 기술로 끝을 알 수 없이 깊게 안내하는 골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고파졌다. 활이 너무 짧아 끊기는 소리가 눈에 보였고, 베토벤 quartet을 똥글하고 맑은 소리로 듣고 감동하기에는 나의 연주 감상 취향이 이미 떡하니 내면 어딘가에 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급기야 가장 기대했던 ‘serioso’ 마지막 곡 3악장쯤에서는 급속도로 피로가 몰려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건만, ‘주중 늦은 시간 공연 관람은 자제해야겠다’ 또는 ‘푹 쉬고 컨디션이 좋을 때만 공연을 감상해야겠다’ 등 새로운 내생활 규율들을 살포시 제정하고 있었다. 1열 중앙이라 대놓고 졸 수도 없었다. 자꾸 연주자와  눈이 마주쳐서 ‘난 지금 감동중이에요, 연주가 너무 좋아요. 끝까지 잘 들려주세요.’를 표정과 비언어로 호응해 주어야 했다. ‘serioso 3,4악장’은 눈 뜨고 비몽사몽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모자람이 아니라, 바로크활의 똥그랗고 날아다니는 맑은소리 때문이리라는 핑계거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휴~~~~ 드디어 모든 공연이 끝났고, 커튼콜을 한다.
‘아벨 토마스(Abel Tomas, Violin)’는 바이올린을 야구방망이 쥐듯 막 쥐고 인사를 한다. 신선한 무대위 인사 몸짓이다. 몸에 붙이지도 않고 팔에 최대한 힘을 넣어 마치 관객에게 던져줄 것처럼 쥐고 강한 눈빛으로 인사를 한다. 축구 선수로 치면, 주장 마크를 단 미드필더 같은 상남자의 포스가 느껴졌다.
‘베라 마르티네즈 메너(Vera Martinez Mehner, Violin)’는 뒷라인이 엑스 모양인 청록색 원피스 색이 너무 예뻤다. 손이 시려워 손을 모으고 불었던 것인지... 연신 오른손을 주먹쥔 채 입에 대고 불었다. 연주 시작 전에...
‘조너선 브라운(Jonathan Brown, Viola)’은 핸섬한 얼굴이었지만, 바로크 활로의 연주가 음과 음 사이에 자꾸 끊기게 들려서 내 귀에는 비기너 연주처럼 느껴졌다.(말도 안 될 테지만) 비올라 특유의 웜톤 솜이불같은 음색이 영 들리지 않아 가장 아쉬웠다. 나에겐...
‘아르나우 토마스(Arnau Tomas, Cello)’는 눈이 약간 처져서인지 표정이 다양하지 않았어도, 첼로의 저음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체적으로 힘이 좋아 보여서 묵직한 첼로 소리를 시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섬세 연약 병약한 인텔리처럼 보이는 하얗고 가는 손가락을 지닌 바이올리스트들만 주로 보다가 덤프트럭 운전대에서 바로 내린 듯한 또는 맨손으로 황소 한 마리도 때려잡을 듯한 왕손으로 연신 비브라토를 해대는 왼손가락이 신기해서 자꾸 눈길을 빼앗겼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니, 어제 모시고 갔던 선생님께서 자기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연주에 대한 만족감과 카잘스 콰르텟 공연에 대한 검색 내용을 쏟아내신다. 참 다행이다. 먼 길까지 체력적으로 힘드셨을텐데, 너무 좋았다 연신 말씀하셨다. 나보고 얼굴이 너무 좋다며, 그렇게 장시간 운전을 하고도 음악으로 에너지를 얻어 피곤해 보이지 않는다고 갑자기 음악 예찬론을 펴신다.
덕분에 어제도 밥을 얻어먹었는데, 오늘 점심도 사시겠다며, 맛있는 점심을 또 사 주신단다. 커피는 내가 대접하겠다며, 흔쾌히 따라 나섰다. 예술을 앞에 두고 존경할 만한 선생님 한 분을 얻은 것 같아 영광스러운 소득이 있는 하루였다.(오늘 야자 감독인건 싫지만...)
 
  작년 ‘Pablo Casals 평전’을 읽으며 알게 된 카잘스의 마지막 아내(18세)와 자신의 40대 제자에게 그 아내를 맡아달라고 유언한 카잘스(80대)와 카잘스 사후 바로 그들은 유언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해 드렸고, 그들 모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선생님의 넓은 아량을 대답으로 건네받으며 두 끼를 함께 한 우리의 뒤풀이는 끝을 냈다.









영화 예스터데이 - 영화 속 마법의 순간

2019. 09. 21.

영화 예스터데이.

통영에서 어제 환상적인 이미지로 남은 괴르네와 조성진의 슈베르트 리트를 듣고, 오늘 어제의 반주자 조성진 그의 리사이틀을 듣기 위해 1박을 했다.

공연은 오후 5시.
매일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끌어올리고 좀비처럼 끌려가야하는 곳이 있는 우리에게

시간은 황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투리 시간에 반드시 필요한 활동을 해야했고, 신중하게 영화를 골랐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조성진의 연주는 객관적일 수 없다 우리에게.... 무조건 가치를 부여해야만 한다. 우리는 재충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안하는 주말을 처절하게 원하지만, 그러한 주말을 망설임도 없이 포기한 채 달리고 달려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예습차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 minor를 듣고 있는데 완전 좋네 이 부분) 관람후기는 이변이 없는 한 정해져 있다. 각자 한 마디씩 찬사를 쏟아내며 우리가 얼마나 가치있는 또 한 순간을 우리의 공유 순간으로 남겼는지 서로 보태기 해 주면서 굳히고 다지며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계속 운전대를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조성진의 공연 관람 후 우리의 공연 찬사에 대한 강도가 좀 약해져도 될 듯 하다. 왜냐하면, 이미 오늘 한 차례 마법의 순간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고른 영화 예스터데이, 나에게 자신의 예술을 나누어 주고, 난 그 나눔의 날을 기다리며 질과 양에 상관없이 거부의 의사가 전혀 없는 감독 중의 한 명 대니보일 감독. 그 분의 올 해 작품이다.

그렇게 흥미롭고 즐거운 영화 관람이 이어지고 있었다

주인공이 어딘가를 달려 어느 집 대문의 초인종을 누른다. 누군가 문을 열어준다. 살아있는 존 레논이다.

마법이 시작되는 찰나다....

존 레논... 올 해 78세
자신의 여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신의 사랑을 계속 지키겠노라....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에게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사라진 것이 있으면 생겨난 것도 있는 법!
마법의 법칙일까?

주인공이 한 번 안아볼 수 있냐고 하고 꼭 껴 안는다.... 그리고 떠난다....사랑을 가지기 위해선 주인공 또한 세상의 것들 앞에 당당해야 하리라.

온 몸에 예상 못한 전율이 흐르고, 난 순간 오노요코가 되어 너무나도 그립고, 언제나 보고싶은 이가 다른 세상에서 나를 계속 지켜주었노라 말 해 주는 양....
마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 영화가 주는 마법의 순간이 찾아왔구나....

그리웠다.... 존 레논이.... 세대를 함께하지도 않았던 비틀즈가....

이어지는 엔딩 곡 헤이주드는 그렇게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에게 위로의 선율을 맘껏 뽑내며 내 눈에서 뜨겁고도 당연한 눈물을 끌어내고 있었다.

비틀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런 세상이 아니기에 얼마나 다행인 것인가.

하~~~ 이런것이 예술적 마법일까?

그리고 과연, 조성진은 나에게 오늘 두 번째 마법의 순간을 선사해 주며 오늘을 행운의 날로 만들어 줄 것인가?



어느새 시작이다... 조성진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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